(ETRI 석사후연수연구원) 0. 판교로
정말 오랜만에 쓰는 일기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말했다, 항상 기록하라고.
이제부터 다시 꾸준히 써보려고한다.
내 자신을 믿고, 항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단단해지자!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까
KIDA에서의 목표는 서울에 안정적인 서울 생활 마련 그리고 나의 미래 찾기였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좋은 여자친구도 사귀고 많은 친구들도 많들었다.
KIDA가 없었다면 정말 쉽지않았을 것이다.
KIDA를 퇴사하고 현재 ETRI AI안전연구실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짧게나마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ETRI 지원과 KIDA 퇴사
우선 내가 KIDA를 퇴사하기전에 목표로 하던게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학원 박사 진학하기 였다.
하지만 잘 안됐다.
대학원 입시 시스템도 잘 몰랐고, 내 스스로가 겁도 많았다.
입시도 모르고 컨텍도 해본적이 없으니 맨땅에 시작하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중에 연세대학교 계산과학공학과에 이은정 교수님 연구실에 컨택이 되었고,
응용수학으로 석박사를 진학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석사와 석박사 진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입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나를 집어 삼켰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했다.
석사를 하면서 수학에 대한 갈증이 나를 지원하게 만들었지만,
입학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진짜 수학의 세계는 정말 어려웠다.
FEM과 수치해석등을 공부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연구의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무서웠지만, 더이상 도망갈 구멍도 없었고, 빨리 박사를 가야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있었기에,
어쩔수 없이 했던 선택이였던거 같다.
지금 솔찍히 말해보면, AI 대학원을 지원했었지만, 거의 모조리 떨어졌었고,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좋은 대학원 위주로 가고싶었다.
그러다보니 연세대학교라는 이름 하나 보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아무튼 입시에 실패하고 빠르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KIDA에 있는다는게 정말 좋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다음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AI라는게 확실해진 순간부터, 내 커리어에서 AI가 멈추면 안된다고 느껴졌고
KIDA는 그와는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찾아본 회사 공고문에서 익숙하디 익숙한 ETRI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 우리집에서 버스로 50분이면 갈 수 있는 판교분원에도 공고가 있는걸 알게되었고,
이전 시각실에서 친했던 연구원들에게 자문을 구해, 어떤 연구를 하는지, 내가 가면 무엇을 하게될지 알게되었다.
빠르게 지원을 하고, 12월 4일 서류 전형 결과가 나왔다.
서류 전형은 합격이였고, 이제 면접이 남았었다.
면접은 12월 15일에 판교 인공지능안전연구소에서 진행되었고,
대략 기억나기로 8명정도 참석하여 8대1 PPT 발표면접이 진행되었다.
우선 나는 석사과정동안 멀티모달을 연구했던것과 KIDA에서 했던 AI 사업을 핵심으로 발표하였다.
뒤가 없다는 마음에 너무 긴장하여 발표 스크립트를 시작하자 마자 다 까먹어버려서, ppt를 보면서 발표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심장이 너무 뛰었지만, 최대한 목소리 가다듬고 핵심 내용을 읽어나갔다.
발표가 끝나고 면접 참여하신분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원한 분야가 AI Safety Jailbreak연구였는데,
LLM과 VLM모델의 이해도와 AI 기본적인 배경, 내가 연구했던 것들을 발표하였고,
기억에 남는 질문은, 왜 KIDA와 같은 군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는지, 최근에 읽었던 대표 논문의 학회와 논문 제목, 그리고 간단하게 설명 요청이였다.
논문 관련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못하였는데, 집에 돌아가는길에 스스로가 한심해서 많이 울적하였다.
대망의 12월 24일, 전공면접결과가 나오는 오전 10시 30분, KIDA 친한 후배들이랑 모여앉아서 결과를 보았는데,
합격 이였다..! 믿기지가 않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마냥 넉놓고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입사일이 1월 19일이였고, 퇴직까지 한달도 체 안남았기 때문이다.
심승배 실장님에게 퇴직관련 이야기를 해야하였는데, 연말이라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다 1월초에 말씀드렸던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서 갑자기 그만두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있기에, 죄송한 마음과 감사했던 마음을 담아 연구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1월 16일 KIDA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퇴직하게 되었다.
ETRI 입사
1월 19일 첫 입사에 맞춰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KIDA에서 받은 키보드를 가지고 판교에 출근하였다.
판교 출근은 통칭 빨간버스라고 불리는 경기버스를 타고 출근하게 되는데, 우선 멀미가 발생하고 버스 도착 시간 편차가 커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괜찮음 ㅋㅋ
연구실에 출근하니 아무도 없어서 많이 당황했는데, 원래 다들 10시 넘어서 출근한다고 들었다.
사무실 자리를 정리하고 이전에 했던것처럼 익숙하게 ETRI ware에 접속해서 신입 입사자 절차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명함도 만들고 이리저리 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고, 우리 연구실의 인원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홍루원”이라는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고,
모두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애기하면서 밥을 먹었다.
본원에 있지 않다보니 인사처리에 필요한 절차가 느렸기 때문에 여유롭게 앞으로 어떤일을 하게 될지 확인하면서 계획을 새웠다.
연구계획서를 읽으며 내가 어떤 연구를 하게될지에 대해서 숙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입사 이후 현재까지
과제 관련
우리 과제 실무 책임자님이 출산휴가가 계획 돼 있어, 3월 중순까지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를 진행했어야 했는데,
대부분 간단한 업무이기도 했고, 빠르게 업무를 쳐냈다.
3월이 돼서 업무를 빠르게 마무리 하고 출산휴가를 가고 나서, 진짜 일이 시작되었다.
우선 벤치마크 데이터셋 생성 업무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해당 업무를 4월 초에 끝내고 용역에 들어갔어야하는데,
현재 데이터 퀄리티 문제가 많아, 5월 19일인 현재까지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실장님의 조언을 얻어 많이 수정되었고, 이번주중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던점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TOIEC 점수 달성!!
입사하고 내가 이뤄낸것중 가장 큰건 TOIEC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선 내 목표 점수는 750점이였고, 그 이유는 추후 박사과정 진학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토익 점수는 750점! 정확히 최소 점수를 얻게되었다.
2024년부터 지금까지 영어공부를 독학으로 하면서, 토플도하고 현재 토익을 마무리 하였는데,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이렇게 부매랑이 돼서 돌아왔다는게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웠지만,
현재는 토익 성적을 받음으로써 한단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750점이 큰 점수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작은 한걸음과 2년동안의 고생의 결과였기에, 너무 행복해서 자랑도 많이 했다.
박사 컨택
현재 KAIST를 기준으로 POSTECH 두 곳을 컨택하고 있다.
우선 KIDA 때부터 현재까지 느낀점은, AI 대학원의 허들은 정말 높다.
우선 지원자가 매우 많다고 느껴지고, 학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입시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석사 점수가 학교 비교해서 높지 않기 때문에 KAIST 박사 입학은 어려울 수 있다는게, 교수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현재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님 세분과 컨택을 진행하고 있고, 나의 특이한 이력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관심이 있으시다고 하셨다.
그리고 POSTECH AI 대학원 교수님 중 한분께서도 나에게 관심이 있으셔서 미팅을 진행하였고, 추후 입시에 연구실로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KAIST에 떨어지게된다면 POSTECH으로 가게될것 같다.
KAIST 입시가 6월 말에 진행되기 때문에, 그동안 서류에 필요한 자료와 추천서를 준비하고, 면접에 필요한 기초 질문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 계획
현재 컨택도 마무리되고 있고, 과제도 마무리되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가장 급한건 연구이다.
내년 3월 입학 예정이라, 그동안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실적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연구가 너무 좋아서 연구원에 왔지만, 나의 부족함은 항상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소심했던 초,중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내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키고 도전하려는 자세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겠지,
하지만 항상 부족한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기본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연구를하고, 미래를 위해 단단한 뿌리를 내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이전에 썻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중에서 너무 슬프고도 기분좋은 한마디가 있어서 다시한번 써보려고한다.
“하지만 괜찮다,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잘 해낼거니까.”